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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창조론: 사랑의 기원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의 선함
1. 함께하는 시간이 만든 변화
아침잠이 많아 늘 깨우기 힘들었던 내가 어느 날부터 스스로 기쁘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어머니는 그 변화가 신기하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2월 10일 오후 2시 30분, 교회 청년반 모임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문이 열리던 순간, 찬란한 빛처럼 그녀가 들어왔고, 그날 이후 내 관심은 한 가지였다.
“그녀는 언제 쉬는가? 어떻게든 함께할 수 있을까?”
당시 나는 남양주에서 안양까지 출퇴근하며, 매일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그녀를 만나러 갔다. 출근 전 5분, 퇴근 후 서너 시간—그 짧은 시간도 함께하려고 애썼다. 쉬는 날이 겹치면 나도 휴가를 내서 함께 보냈다. 그렇게 70여 일이 흐르고, 동산에 꽃이 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26년, 우리는 서로의 삶과 시간을 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랑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2. 창조와 사랑, 그리고 함께함
성경은 말한다.
물리계는 무질서도가 증가하고 있고, 스스로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이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 있게 창조되었고, 이는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성경의 역사이다.
그러나 엿새간의 창조는 끝이 아니었다.
일곱째 날, 하나님은 쉬셨고, 그날은 은혜로 구별된 완성의 창조, 축복의 시작이었다.
무엇이 창조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그날을 기억하고 지킨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날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3. 사랑은 함께하는 시간
내가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듯이,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
그 사랑은 단순한 철학이나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일한 물리적 시간 속에서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매일의 시간, 그분과 쉼을 함께하는 일곱째 날이 바로 사랑의 징표이다.
그날은 단지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해야만 하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날이다.
4. 선함의 유일한 길
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운 적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에,
그분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다.
그렇게 선함이 가능해진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나는 말한다.
“당신을 도우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아닙니다.”
이것이 내가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선함의 길이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그것이 곧 선교의 삶이다.
5. 사랑의 기원은 ‘함께함’
일곱째 날은 모든 사랑의 기원이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모든 참된 사랑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그날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다.
철학적 개념이 아닌 실제적인 역사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계신다.
안식일의 진정한 예배는 예수님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할 때, 내 삶의 어둠은 그분의 빛을 이기지 못한다.
사랑은 시간이다
그녀와 함께했던 70일,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매 순간의 삶 속에서 나는 배웠다.
사랑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사랑은 삶을 섞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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