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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주는 위로: “당신이 있어 다행이다”
장례식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며 어쩔 수 없이, 자주 그곳에 서게 됩니다.
어떤 장례식은 유독 슬프고, 또 어떤 장례식은 오히려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떠나보내야 할 삶, 사랑, 관계에 대한 추억과 아픔, 그리고 감사와 위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장례식, 그리고 신앙의 편린들
장례식이라는 자리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들—희망과 두려움, 믿음과 의심—을 끌어내는 장소입니다.
평소 신앙에 관심 없어 보이던 사람들조차, 이 자리에서는 종교적 표현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를 구합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일부는 신앙이 단지 슬픔을 달래는 '심리적 목발', 혹은 현실 도피 수단일 뿐이라며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 비판,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이런 비판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맞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1. “맞다” – 신앙이 위로의 수단인 건 사실입니다
신앙은 때때로 냉혹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됩니다.
때로는 힘을 잃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온기 어린 쉼터이기도 하죠.
마르크스가 말한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처럼 권력자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지만, 진짜 신앙은 오히려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감당하도록 돕는 힘입니다.
삶의 고통, 억울함, 죽음—신앙은 이것들이 인생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게 하며,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부축해 줍니다.
2. “아니다” – 신앙은 도피가 아닌, 현실을 살아내는 힘
신앙은 결코 쉽고 편한 길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과 더욱 깊이 마주하도록 부르며, 불의와 고통 앞에 침묵하지 않도록 요구합니다.
“진정으로 불의에 맞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세계, 다른 차원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뿐이다.”
– 반다나 시바
역사를 보면, 신앙은 그저 감성적인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 때문에 고통받았고, 위험을 감수했으며,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목소리를 낸 이들도 신앙을 따랐습니다.
3.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 신앙은 의미를 향한 길
신앙은 단순한 해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
- 고통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이 질문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무겁고 날카로운 의문이지만, 그들은 이런 질문들을 통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결국, 신앙은 "잘 살아가기 위한 길"
우리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그 순간에,
마침내 삶의 본질에 닿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신앙은,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와 용기, 그리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틈을 열어줍니다.
사랑하는 이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 발걸음 위에 드리워진 씁쓸함과 쓸쓸함 속에서도
신앙은 우리 마음을 붙잡아줍니다.
“신앙은 부끄러운 위안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희망을 붙잡고,
슬픔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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