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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창조론: 어머니의 구덕, 예수님의 안식 – 함께하는 존재적 사랑
빨간 석양 너머, 어머니를 그리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 전인권, 「사랑한 후에」
1984년 5월, 가수 전인권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 충격은 너무도 커서, 철길 옆에 멍하니 서 있다가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기차의 커다란 울음소리로도 달랠 수 없던 그 슬픔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존재적 사랑에서 비롯된 상실입니다.
존재의 사랑 vs 본질의 판단
우리는 흔히 사물을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길 원합니다. 더 성능 좋은 자동차, 더 예쁜 옷, 더 똑똑한 무엇이든지… 이것이 본질 중심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다릅니다.
어머니는 자녀가 얼마나 예쁜지, 똑똑한지, 성공했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 아이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로 사랑합니다.
원하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고, 아픔과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지만…
자녀는 단지 자녀라는 이유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존재적 사랑’의 본질입니다.
함께한 시간, 존재의 깊이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더 오래, 더 깊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열 달을 어머니의 몸 안에서 함께 지냈고, 그 시간 속에서 어머니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기쁘면 아이도 기쁘고, 어머니가 배고프면 아이도 함께 느낍니다.
이 완전한 ‘함께함’이 존재의 뿌리입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모든 생명체의 어미가 보여 주는 희생의 사랑입니다.
그 깊고 오랜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의 강력한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적 사랑과 안식의 창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일에 쉬셨습니다.
그날은 단순한 쉼이 아닌, 하나님과 자녀가 함께한 첫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잘못을 질책하시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책임을 지십니다.
십자가는 그 사랑의 절정입니다. 죄의 누명을 뒤집어쓰시고도 은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짊어지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처럼 길을 알려주시고, 어머니처럼 손을 잡아 주시는 분입니다.
어머니의 구덕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
어린 시절, 밭일을 함께한 딸아이가 저녁 무렵 칭얼댔습니다.
피곤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머니는 지친 몸으로 아이를 구덕에 앉히고 집까지 짊어지고 왔습니다.
그 구덕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사랑의 안식처였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예수님의 태산 같은 사랑을 배운 것입니다.
이 구덕은 예수님의 구원, 그분의 십자가, 함께 짊어지시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존재적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모두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잃은 뒤 한 달 동안 식사도 못 하고 슬퍼하셨던 모습,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떠나보내며 가장 슬프게 우셨던 장면…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 필요한 자녀라는 사실을.
교회가 가득 채워야 할 사랑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로 선물해 주신 ‘존재적 사랑’입니다.
구덕의 안식,
손을 잡아주는 은혜,
함께함의 구속 없는 사랑.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신앙으로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오늘의 묵상 질문
나는 누군가에게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존재로 사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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