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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행복의 비밀 — 자족

예쁜코뿔소 2025. 8. 18. 00:53

 

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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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비밀 — 자족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4년, 베트남 호찌민에서의 근무가 저에게 결정되었을 때, 저는 ‘꿈 같은 해외 생활’이라는 단어에 마냥 설렜습니다. 그동안 라디오에서나 책에서 들었던 ‘해외 한 달 살기’ 같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로망으로 떠올랐고, 특히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따스한 햇살, 야자수가 드리워진 풍경, 그리고 달콤한 과일이 잔뜩 떠오르는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설렘과 기대를 가득 품고 우리는 차곡차곡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생각보다 멀었고, 현실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여정은 집정리부터 이미 쉽지 않았습니다. 전셋집을 비우는 일, 집안 살림을 정리하는 일, 자동차 정비 등 한국에서의 마무리가 쉽사리 끝나질 않았죠. 가족 모두가 지쳐갔지만, 그것조차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베트남은 그 시기 입국이 극도로 제한된 상태였습니다. 비자를 발급받은 소수만 특별기를 통해 베트남으로 갈 수 있었고, 우리 가족도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만, 출국 하루 전 운명의 장난처럼 전 가족이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절망감이 우리를 덮쳤고, 출국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특별기 전날에 검사가 음성으로 나왔고, 우리 가족은 간신히 베트남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했던 늦은 밤, 멘토 선생님이 반겨 주신 미소, 손에 쥐어주셨던 꽃다발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정착은 바로 다음부터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업고 뜨거운 햇살 아래 10여 군데의 집을 돌아봤던 경험은 한여름 군장 행군 같았습니다. 땡볕 아래, 숨도 쉬기 어렵고 열기는 땀방울처럼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물병을 놓을 수 없었고, 햇볕 탓에 반팔이 아닌 긴팔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불편보다 더 힘든 건, 가족들의 마음이 하나둘 지쳐가는 것이었습니다. 번역기에 의존해 사소한 일조차 소통해야 하는 아내, 생애 처음 해외에서 시작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 아들,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해 매일 울던 딸을 보는 제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새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집에서 매일 마주하게 되는 건 사소한 불평과 후회, 그리고 불만들이었고, 저 역시 자신이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느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이들이 같은 장난감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보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너희는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데, 항상 싸우기만 하지? 내가 없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해 보면 어떻겠니?”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불평보다 감사하지 않았던 건, 사실 ‘나’였던 게 아닐까. 이 상황의 불만들을 감사로 바꿀 수만 있다면, 진정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바로 ‘자족(自足)’, 그러니까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이 우리가 찾아야 할 열쇠라는 사실을.


불평을 감사로 바꾸는 세 가지 이야기

1. 뜨거운 더위 — 불평에서 감사로

처음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던 베트남의 더위가, 어느 순간 새로운 감사의 조건으로 바뀌었습니다. 시내를 걷느라 땀을 흘리던 시간은 줄어들었고, 실내에선 대부분 에어컨이 빵빵히 작동했습니다. 가끔은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갑다 싶을 때, 따스한 햇살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죠. 또 무엇보다, 이 뜨거운 햇빛 덕분에 야외 활동이 다양해졌고, 망고, 두리안, 리치 같은 싱그러운 과일들이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손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에게 과일은 필수였기에, 이 풍성한 과일 덕분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2. 외로움 — 가족만의 시간, 행복으로

친인척도 지인도 없는 낯선 땅이기에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깨웠습니다. 사소한 대화부터 시작해, 자전거 타기, 보드게임, 산책하며 곤충 찾기까지. 특히 퇴근 후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웃음이 하루의 피로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수영장에서 언어가 달라도 함께 노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노을이 물드는 저녁, 조용히 물든 하늘 아래 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는 순간들은 감사로 채워졌고, 외로움은 어느새 행복함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3. 자동차 없음 — 느려도 감사할 수 있는 변화

한국에선 매일 장거리 통근을 하던 저는 자동차가 그리웠습니다. 덥고 짐이 무거워 한 걸음도 힘들 때마다, 차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죠. 그런데 베트남에서 차량 관세가 무려 200%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오히려 차를 고집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감사의 조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통근 버스로 10분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매일 감사 기도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절약된 시간으로 아내와 아침 조깅을 시작했고, 베트남의 해가 뜨면 바로 더워지기 때문에 해뜨기 전 사람들이 조깅하는 모습을 따라 함께 했습니다. 걸으며 대화도 나누고, 땀을 흘리며 운동까지 하니,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사 온 싱싱한 망고와 아보카도 스무디는 가족의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과감히 구매한 것도 감사로 이어졌습니다. 차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무거운 짐을 옮겨 주고, 좁은 좌석 덕분에 가족이 강제적으로 허그하게 되는 순간들이 또 다른 감사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일 가정 예배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감사의 조건들을 입모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5살 딸도 예외는 아닙니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근육은 반복해서 길러야 한다” 는 믿음으로, 우리 가족은 매일 감사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가고 있습니다.


결론: 자족, 그리고 행복

그렇다면, 나의 조건과 환경을 바꾸지 않고도 어떤 상황에서든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가짐, 그것은 무엇일까요?

  1. 먼저 자신의 불만과 걱정을 차분하게 바라봅니다. 그것들이 정말 큰 문제인지, 아니면 우리가 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보는 거죠.
  2. 그런 가운데에서 작은 감사의 씨앗을 찾아보세요. 먼지만큼이라도 감사의 흔적이 보이면, 그것을 ‘자족’이라는 마음의 양분으로 삼아 키워보세요.
  3. 그렇게 자라난 작은 감사들이 모여 행복이라는 꽃을 피웁니다.

마치 핑크 대왕 퍼시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안경을 핑크색으로 바꿨듯, 우리도 ‘자족’이라는 마음의 색으로 눈을 물들여 ‘행복’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