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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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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종말의 시작인가?

– 성경 예언과 오늘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 –


1. 2023년 10월 7일, 충격의 시작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아침.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초막절(수콧) 연휴 마지막 날, 평화로워야 할 아침은 순식간에 전쟁의 서막으로 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점거하고 있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향해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했습니다. 이어 오토바이, 보트, 픽업트럭, 심지어 패러글라이더까지 동원해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군사시설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을 겨냥했고 어린아이와 노인,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 충격적인 공격 앞에서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오전 11시 30분, 공식 성명을 통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전쟁 중이다.”

즉각 이스라엘군은 ‘철검 작전(Operation Iron Swords)’이라는 이름의 대대적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전기·식량·물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며 전면전에 돌입했습니다. 전쟁은 단순한 충돌을 넘어 끝을 알 수 없는 비극의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2. 왜 하필 이 땅인가? – 시오니즘과 역사적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단순한 국경 문제가 아닙니다.
그 뿌리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합니다.

 시오니즘의 탄생

  • 시오니즘(Zionism)은 고대 유대인들이 땅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운동을 말합니다.
  • 19세기 후반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박해 속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고,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겪은 세계는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을 국제적으로 승인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갈등의 본질

문제는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 세기 동안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고, 당연히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조상의 땅’.

민족적 적대감 + 종교적 신념 + 정치적 이해관계가 겹쳐져 갈등은 불가피했습니다.


3.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세계의 시선

2018년 12월, 당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리는 선언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

이 발언과 함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성지입니다. 따라서 이 결정은 단순한 외교적 행위가 아니라, 세계 종교·정치 지형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다시금 시오니즘에 불을 붙였고, 많은 기독교인들까지도 “성경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게 만들었습니다.


4.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 아브라함의 약속

시오니즘의 가장 큰 신학적 근거는 바로 창세기 12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그 땅은 지금까지도 영원히 유대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많은 사람을 가리켜 씨들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씨’라 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시라.”

즉,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고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은 지리적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통치 아래 온 세상으로 확장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5.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계다?”

많은 시오니스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예언적 시계다.
유대인이 약속의 땅에 모일 때, 종말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로 자주 인용되는 말씀은 로마서 11장 25~27절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에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 약속까지 결합시켜,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을 곧 재림의 신호로 보는 해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문자적 이해에 치우쳐,
예수님 외에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6. 포도원의 비유 – 접붙임된 가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참감람나무 가지 얼마가 꺾이고,
돌감람나무인 여러분이 거기에 접붙여졌다.” (롬 11:17)

이 말씀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 기독교는 유대교 뿌리 위에서 자란다.
  • 그러나 구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 따라서 반유대주의도, 유대 절대주의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7. 예언 해석의 위험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보며 묻습니다.
“이게 바로 성경에 예언된 종말의 시작이 아닌가?”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니” (벧후 3:10)
  •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마 24:36)

예언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곧장 “예언의 성취”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수천 년 전 예언은 특정한 한 사건보다 훨씬 더 넓은 맥락과 영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8.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단순히 종말 시계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실제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고통을 단순 계산으로 풀지 말고,
이웃 사랑과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가르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과도한 예언 해석 자제
    • 전쟁을 종말의 ‘확정적 신호’로 단정하지 말 것.
  2. 기도와 중보
    • 분쟁 속에 고통받는 무고한 이들을 위해 기도.
  3. 평화의 도구가 되라
    • 신앙인으로서 증오를 부추기는 대신 화해와 평화를 말하라.
  4. 재림 준비는 오늘의 삶에서
    • 종말의 날짜를 묻기보다,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가라.

10. 결론: 전쟁과 종말, 그리고 우리의 시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분명 비극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종말의 시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마 24:6)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종말의 시계를 맞추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과 고통의 현장에서 평화와 화해의 통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주어진 우리의 소명입니다.